파도는 커튼콜을 받지 않는다
에이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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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태안의 해안선은 파도가 옹위한다. 크고 작은 파도는 해안 단애의 바위를 무너뜨리며 갯벌을 일구고 모래톱을 세운다. 바다의 들숨과 날숨에 의해 밀려왔다 밀려가는 억겁의 시간은 뭍 위에 굴곡으로 남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안사구인 신두리 해변은 태안의 파도가 남긴 한 곡조 절창(絶唱)이다.
◆신두리 모래언덕의 콘서트
파도는 분명 강물의 뒤척임과 다르다. 산야를 휘돌아 굽이치는 강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로병사를 거친다.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한 생애를 일군다. 그에 비해 바다의 너울은 여울지지도, 기진하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달이 끄는 힘에 의해 운행할 따름이다. 예외가 없는 반복이라 무정(無情)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정한(情恨)에 잠기게 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그런 무정한 파도의 생성물이다. 너울에 밀려 뭍으로 올려진 모래톱 해안이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의해 낮은 구릉을 형성했다. 이러한 과정은 모래에서 비린내와 소금기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수천년 동안 더디게 진행된다.
작은 섬에 견줄만한 면적의 모래언덕은 내륙과 해안의 완충지대로 동식물의 식생이 유별나다. 문화재청이 신두리 해안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겉모습은 마른 풀만 무성한 구릉과 모래밭이지만 보호종 양서류와 다양한 사구식물이 기거한다. 해양과 육지 생태계 어느 한쪽 세력권에 편입되지 않는 생명들이다.
신두리를 비롯한 태안의 해안선 1300리는 거대한 야외공연장이기도 하다. 서해는 하루에 두 차례씩 뭍으로 작곡가를 파송해 신생의 교향곡을 펼쳐놓는다. 파도의 규칙적 리듬은 단단한 모래 퇴적물에 오선지를 새기고, 갯벌을 헤집고 꼼지락거리며 꿈틀대는 갯것들이 그 위에 음표를 그려 넣는다.
나선형의 조개껍질을 뒤집어쓴 게가 부지런히 쏘다니며 높은음자리를 찍고, 갯지렁이와 조개가 몸으로 남긴 음표들이 옥타브를 이룬다. 찰나의 겨를도 없이 운행되는 생명의 몸짓은 조밀하고 가지런하다. 거대한 악보 위의 노래는 우연의 소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인과성이 뒷받침된다.
파도에 의해 섬세하게 주름진 태안의 해안선이 언제까지 영속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두리 일대만 해도 지난 수년 동안 사유지에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저절로 이지러진 달을 억지로 부풀리는 작위가 가해지고 있다. 파도가 남긴 궤적처럼 무위자연은 인간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지만, 자연물 역시 인간세의 일부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온전한 자리에서 파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자 한다면 더 늦기 전에 태안을 찾아가 볼 일이다. 신두리의 파도는 커튼콜을 받지 않는다.
~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 글/장성배 기자(up@yna.co.kr)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태안의 해안선은 파도가 옹위한다. 크고 작은 파도는 해안 단애의 바위를 무너뜨리며 갯벌을 일구고 모래톱을 세운다. 바다의 들숨과 날숨에 의해 밀려왔다 밀려가는 억겁의 시간은 뭍 위에 굴곡으로 남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안사구인 신두리 해변은 태안의 파도가 남긴 한 곡조 절창(絶唱)이다.
◆신두리 모래언덕의 콘서트
파도는 분명 강물의 뒤척임과 다르다. 산야를 휘돌아 굽이치는 강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로병사를 거친다.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한 생애를 일군다. 그에 비해 바다의 너울은 여울지지도, 기진하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달이 끄는 힘에 의해 운행할 따름이다. 예외가 없는 반복이라 무정(無情)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정한(情恨)에 잠기게 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그런 무정한 파도의 생성물이다. 너울에 밀려 뭍으로 올려진 모래톱 해안이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의해 낮은 구릉을 형성했다. 이러한 과정은 모래에서 비린내와 소금기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수천년 동안 더디게 진행된다.
작은 섬에 견줄만한 면적의 모래언덕은 내륙과 해안의 완충지대로 동식물의 식생이 유별나다. 문화재청이 신두리 해안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겉모습은 마른 풀만 무성한 구릉과 모래밭이지만 보호종 양서류와 다양한 사구식물이 기거한다. 해양과 육지 생태계 어느 한쪽 세력권에 편입되지 않는 생명들이다.
신두리를 비롯한 태안의 해안선 1300리는 거대한 야외공연장이기도 하다. 서해는 하루에 두 차례씩 뭍으로 작곡가를 파송해 신생의 교향곡을 펼쳐놓는다. 파도의 규칙적 리듬은 단단한 모래 퇴적물에 오선지를 새기고, 갯벌을 헤집고 꼼지락거리며 꿈틀대는 갯것들이 그 위에 음표를 그려 넣는다.
나선형의 조개껍질을 뒤집어쓴 게가 부지런히 쏘다니며 높은음자리를 찍고, 갯지렁이와 조개가 몸으로 남긴 음표들이 옥타브를 이룬다. 찰나의 겨를도 없이 운행되는 생명의 몸짓은 조밀하고 가지런하다. 거대한 악보 위의 노래는 우연의 소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인과성이 뒷받침된다.
파도에 의해 섬세하게 주름진 태안의 해안선이 언제까지 영속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두리 일대만 해도 지난 수년 동안 사유지에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저절로 이지러진 달을 억지로 부풀리는 작위가 가해지고 있다. 파도가 남긴 궤적처럼 무위자연은 인간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지만, 자연물 역시 인간세의 일부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온전한 자리에서 파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자 한다면 더 늦기 전에 태안을 찾아가 볼 일이다. 신두리의 파도는 커튼콜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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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 글/장성배 기자(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