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이 넘실대는 주문도
보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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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섬이다. 지금은 강화대교, 초지대교가 놓여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지만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그런 강화도가 크고 작은 여러 섬을 또 품고 있다. 교동면에 교동도, 삼산면에 석모도, 그리고 서도면에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말도가 이웃처럼 자리 잡았다.
이름도 재미있는 강화 서도면의 섬
외포리 포구에서 서해 쪽으로 배를 타고가면 강화군 서도면이 나온다. 서도면에는 주문도에 면소재지가 있고, 볼음도가 형제처럼 가깝다. 두 섬 사이에 아차도가 있고, 강화해협 끝에 말도가 있다.
‘주문도’는 임경업 장군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이 섬에서 임금님께 하직하는 글을 올렸다 하여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다.
‘볼음도’는 장군이 풍랑을 만나 보름간 체류하다가 둥근 달을 보았다고 하여 만월도(滿月島)라 하였는데, 그 후 보름달을 발음대로 하다 보니 볼음도(乶音島)라 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차도’는 모도(母島)인 주문도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육지에서 천년, 바다에서 천년을 산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승천하다가 임신한 여자를 보고 ‘아차’하는 순간 바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섬이 되었다 하여 아차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언덕 아(阿)자와 이 섬을 표시한다는 뜻인 이 차(此)자를 써서 아차도(阿此島)라 쓰고 있다.
‘말도’에는 더 재미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강화해협 맨 끝에 있다하여 끝말(末)자를 써서 말도라 했는데, 옛날 관청에 보고를 할 때 교통상 늦어 만날 꾸지람을 들었다 하여 끝말(末)자 밑에 꾸짖을 질(叱)자를 붙여서 말도(唜島)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지난 달 29일 강화지역 교감 선생님들의 서도중·고등학교의 학교 방문 행사 차 주문도에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외포리 포구에서 주문도로 가는 행정선에 몸을 실었다. 행정선은 일주일에 두 번 운행하는데 일반 여객선보다 속도가 빨랐다. 이른 아침 옅은 안개가 낀 서해 바다에 고즈넉한 정적이 흘렀다.
배를 타면 저마다 즐거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십을 넘긴 우리 일행들도 싱그러운 바닷바람과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을 펴며 좋아한다. 하얀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통통배를 뒤따르는 갈매기 울음소리도 정겹다.
30여분의 짧은 시간에 벌써 주문도 선착장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사람들로 북적일 선착장이지만 아직 철이 이른 탓인지 한산하다.
전통 한옥의 개신교 건물... 깊은 신앙심이!
강화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의 안내로 서도중앙교회부터 찾았다. 서도중앙교회는 1923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교회이다. 그러니까 80여 년의 세월을 버텨온 전통 한옥 예배당인 것. 100여 년 전, 주문도라는 작은 섬에 복음이 들어온 뒤, 주민들의 헌금으로 지었다고 한다.
육지에서 목재와 기와를 날라서 지었을 텐데, 그 당시 주민들의 수고는 얼마였을까? 초기의 교회가 진촌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1978년에 지금의 서도중앙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도중앙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박형복 목사님이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주문도는 서양의 종교가 우리나라로 전래되는 중요한 지점이죠. 그 현장인 외딴 섬에 신앙심 깊은 주민들이 이렇게 멋진 교회를 지었다는 데 놀라움이 있지요.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구요. 주문도는 전체 주민들이 복음화가 될 정도로 신앙심이 아주 두터운 곳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2층 종루(鐘樓) 형태의 지붕을 갖고 있으며, 본당 쪽은 일반 한옥 형태로 팔각지붕이다. 우리 전통 목조 건물의 가구형식을 바탕으로 서양교회가 지어진 모습이 멋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개별학습의 교육이 펼쳐지는 낙도의 학교
우리 일행은 목적지인 서도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서도면은 주문도 초·중·고를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볼음도에도 초등학교 분교와 중학교 분교가 있다. 예전에는 아차도, 말도에도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인구 감소로 지금은 폐교되었다. 서도면에는 4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김종현 교장 선생님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곳 서도면에는 300여 세대에 6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어요. 주로 농사일을 하며, 어업에도 종사하지요. 문화적 혜택에선 육지에 뒤질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도회지 사람 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도 여느 섬마을처럼 미니학교지만 학생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요.”
교장 선생님의 지역사랑과 학교사랑이 물씬 묻어나오는 설명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작은 학교에서도 손색없는 교육활동이 펼쳐지고 있음이 학교 구석구석에서 나타났다.
학교를 안내하며 교장 선생님은 학교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낙도의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개별학습이 가능합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마주 앉아 맞춤식 교육을 하는 것이죠. 시설 또한 도회지 학교에 절대 뒤지지 않아요. 이 보다 좋은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하는 학교가 드물 거예요. 우리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학생 수가 적다보니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토로하였다. 그래도 자연과 더불어 좋은 품성을 키워가는 학생들의 순박한 모습이 예뻐 보였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섬
주문도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다. 드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해풍과 깨끗한 공기로 밥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인근 바다에서는 상합이 생산되는 청정지역이다. 원래 백합이라고 부르는 상합은 죽과 구이, 탕으로도 먹지만 회로도 먹을 수 있어 조개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요즘 연안이 오염되어 상합이 예전보다 줄었다지만 이곳은 아직도 많이 잡히고 있다.
올해는 소라와 바지락도 풍년이라고 하니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가? 이곳은 부지런하기만 하면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널려 있다고 한다.
아직 한가하기만 한 ‘뒷장술해수욕수장’은 안개 속에 묻혀있었다. 바다로 일을 나가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에서 풋풋한 인간의 정이 느껴졌다. 아스라이 멀리 떨어진 개펄에서 조개를 캐는 힘든 작업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주문도는 해당화가 무척 많아 ‘해당화 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섬 둘레 전체가 해당화 군락지로 유명하였다. 지금은 제방공사로 많이 훼손되어 있어 흐드러지게 핀 해당화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끝없이 펼쳐진 개펄, 손에 잡힐 것 같은 풍요로움이 넘치는 곳이 주문도이다. 여간해서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배짱이 두둑한 주문도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현장이 며칠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더욱이 점심 때 먹은 시원한 국물의 상합탕, ‘썩어도 준치’라는 준치회, 입안에서 살살 녹은 병어조림의 맛은 주문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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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갑남 기자]
이름도 재미있는 강화 서도면의 섬
외포리 포구에서 서해 쪽으로 배를 타고가면 강화군 서도면이 나온다. 서도면에는 주문도에 면소재지가 있고, 볼음도가 형제처럼 가깝다. 두 섬 사이에 아차도가 있고, 강화해협 끝에 말도가 있다.
‘주문도’는 임경업 장군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이 섬에서 임금님께 하직하는 글을 올렸다 하여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다.
‘볼음도’는 장군이 풍랑을 만나 보름간 체류하다가 둥근 달을 보았다고 하여 만월도(滿月島)라 하였는데, 그 후 보름달을 발음대로 하다 보니 볼음도(乶音島)라 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차도’는 모도(母島)인 주문도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육지에서 천년, 바다에서 천년을 산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승천하다가 임신한 여자를 보고 ‘아차’하는 순간 바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섬이 되었다 하여 아차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언덕 아(阿)자와 이 섬을 표시한다는 뜻인 이 차(此)자를 써서 아차도(阿此島)라 쓰고 있다.
‘말도’에는 더 재미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강화해협 맨 끝에 있다하여 끝말(末)자를 써서 말도라 했는데, 옛날 관청에 보고를 할 때 교통상 늦어 만날 꾸지람을 들었다 하여 끝말(末)자 밑에 꾸짖을 질(叱)자를 붙여서 말도(唜島)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지난 달 29일 강화지역 교감 선생님들의 서도중·고등학교의 학교 방문 행사 차 주문도에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외포리 포구에서 주문도로 가는 행정선에 몸을 실었다. 행정선은 일주일에 두 번 운행하는데 일반 여객선보다 속도가 빨랐다. 이른 아침 옅은 안개가 낀 서해 바다에 고즈넉한 정적이 흘렀다.
배를 타면 저마다 즐거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십을 넘긴 우리 일행들도 싱그러운 바닷바람과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을 펴며 좋아한다. 하얀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통통배를 뒤따르는 갈매기 울음소리도 정겹다.
30여분의 짧은 시간에 벌써 주문도 선착장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사람들로 북적일 선착장이지만 아직 철이 이른 탓인지 한산하다.
전통 한옥의 개신교 건물... 깊은 신앙심이!
강화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의 안내로 서도중앙교회부터 찾았다. 서도중앙교회는 1923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교회이다. 그러니까 80여 년의 세월을 버텨온 전통 한옥 예배당인 것. 100여 년 전, 주문도라는 작은 섬에 복음이 들어온 뒤, 주민들의 헌금으로 지었다고 한다.
육지에서 목재와 기와를 날라서 지었을 텐데, 그 당시 주민들의 수고는 얼마였을까? 초기의 교회가 진촌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1978년에 지금의 서도중앙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도중앙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박형복 목사님이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주문도는 서양의 종교가 우리나라로 전래되는 중요한 지점이죠. 그 현장인 외딴 섬에 신앙심 깊은 주민들이 이렇게 멋진 교회를 지었다는 데 놀라움이 있지요.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구요. 주문도는 전체 주민들이 복음화가 될 정도로 신앙심이 아주 두터운 곳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2층 종루(鐘樓) 형태의 지붕을 갖고 있으며, 본당 쪽은 일반 한옥 형태로 팔각지붕이다. 우리 전통 목조 건물의 가구형식을 바탕으로 서양교회가 지어진 모습이 멋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개별학습의 교육이 펼쳐지는 낙도의 학교
우리 일행은 목적지인 서도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서도면은 주문도 초·중·고를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볼음도에도 초등학교 분교와 중학교 분교가 있다. 예전에는 아차도, 말도에도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인구 감소로 지금은 폐교되었다. 서도면에는 4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김종현 교장 선생님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곳 서도면에는 300여 세대에 6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어요. 주로 농사일을 하며, 어업에도 종사하지요. 문화적 혜택에선 육지에 뒤질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도회지 사람 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도 여느 섬마을처럼 미니학교지만 학생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요.”
교장 선생님의 지역사랑과 학교사랑이 물씬 묻어나오는 설명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작은 학교에서도 손색없는 교육활동이 펼쳐지고 있음이 학교 구석구석에서 나타났다.
학교를 안내하며 교장 선생님은 학교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낙도의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개별학습이 가능합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마주 앉아 맞춤식 교육을 하는 것이죠. 시설 또한 도회지 학교에 절대 뒤지지 않아요. 이 보다 좋은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하는 학교가 드물 거예요. 우리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학생 수가 적다보니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토로하였다. 그래도 자연과 더불어 좋은 품성을 키워가는 학생들의 순박한 모습이 예뻐 보였다.
풍요로움이 넘치는 섬
주문도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다. 드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해풍과 깨끗한 공기로 밥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인근 바다에서는 상합이 생산되는 청정지역이다. 원래 백합이라고 부르는 상합은 죽과 구이, 탕으로도 먹지만 회로도 먹을 수 있어 조개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요즘 연안이 오염되어 상합이 예전보다 줄었다지만 이곳은 아직도 많이 잡히고 있다.
올해는 소라와 바지락도 풍년이라고 하니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가? 이곳은 부지런하기만 하면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널려 있다고 한다.
아직 한가하기만 한 ‘뒷장술해수욕수장’은 안개 속에 묻혀있었다. 바다로 일을 나가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에서 풋풋한 인간의 정이 느껴졌다. 아스라이 멀리 떨어진 개펄에서 조개를 캐는 힘든 작업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주문도는 해당화가 무척 많아 ‘해당화 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섬 둘레 전체가 해당화 군락지로 유명하였다. 지금은 제방공사로 많이 훼손되어 있어 흐드러지게 핀 해당화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끝없이 펼쳐진 개펄, 손에 잡힐 것 같은 풍요로움이 넘치는 곳이 주문도이다. 여간해서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배짱이 두둑한 주문도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현장이 며칠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더욱이 점심 때 먹은 시원한 국물의 상합탕, ‘썩어도 준치’라는 준치회, 입안에서 살살 녹은 병어조림의 맛은 주문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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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갑남 기자]